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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뉴스

아파트에 집착하는 한국인, 우리는 왜 아파트를 집의 기준으로 생각하게 되었을까? (창신동 절벽, 현대적인 집의 상징, 자산이 된 과정)

by 아키마케터 2026. 9. 8.

아파트에 집착하는 한국인, 우리는 왜 아파트를 집의 기준으로 생각하게 되었을까?

 

한국에서 집을 이야기할 때 유독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아파트입니다. 어디에 사는지 물어본 뒤 아파트 이름을 이야기하고, 몇 평인지 묻고, 얼마에 거래되는지를 이야기합니다. 어느 순간 집은 내가 살아가는 공간이라기보다 하나의 숫자와 자산으로 설명되는 물건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정말 한국인은 원래부터 아파트를 좋아했던 것일까요? 아파트가 편리하고 안전하기 때문에 선택하는 것인지, 아니면 아파트에 살아야 한다는 사회적 기준을 학습한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이 문제를 생각하다가 서울 창신동을 떠올리게 됐습니다. 창신동에는 다른 아파트 단지에서는 보기 어려운 아주 독특한 풍경이 있습니다. 오래된 주택과 봉제공장,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 낙산 성곽 그리고 거대한 화강암 절벽이 한 동네 안에 함께 존재합니다.

그곳을 바라보고 있으면 서울의 주거 역사가 한 장면에 겹쳐 보입니다. 그리고 그 풍경은 우리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아파트라는 하나의 주거 형태에 집착하게 되었을까요?

 

 

1. 창신동 절벽에는 서울의 주거 역사가 남아 있다

창신동을 처음 방문하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빽빽하게 들어선 집들이 아니라 의외의 거대한 절벽입니다.

낙산 일대는 화강암이 많은 지역이었고, 창신동 일대에는 일제강점기 채석장의 흔적이 지금까지 남아 있습니다. 당시 채석장에서 나온 석재는 경성역과 조선총독부 등 근대 건축물에 사용됐습니다.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창신·숭인 지역에는 당시 채석장의 절개지가 여러 곳 남아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 이후입니다.

 

채석장이 사라진 자리에 사람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 주변에 집들이 하나둘 생겼습니다. 1960년대 이후에는 동대문 일대 의류산업이 성장하면서 봉제업체들이 모여들었고, 주거와 생산시설이 뒤섞인 독특한 동네가 만들어졌습니다.

창신동의 골목을 걷다 보면 이런 변화가 그대로 보입니다.  성곽이 있고, 그 옆에 절벽이 있고, 그 아래에는 오래된 주택이 있습니다. 조금 더 내려가면 벽돌로 지은 양옥과 다세대주택이 나타나고, 다시 고개를 돌리면 멀리 고층 아파트가 보입니다.

 

조선시대의 성곽, 일제강점기의 채석장, 1960~70년대의 주택, 산업화 시대의 다세대주택, 그리고 현대의 아파트가 한 화면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풍경이 상당히 흥미롭다고 생각합니다.

도시계획자가 처음부터 모든 것을 설계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필요한 만큼 집을 만들고 길을 만들고 공간을 바꿔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곳을 아름답다고만 말할 수도 없습니다. 실제로 창신동 같은 언덕마을에서는 자동차 접근성이 떨어지고, 물류나 배달, 주차, 생활 편의시설 이용이 불편할 수 있습니다. 도시를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독특하고 아름다운 풍경이지만, 그곳에서 매일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해결해야 할 생활의 문제가 됩니다. 이 차이가 중요합니다.

도시의 아름다움과 주민의 편리함은 항상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파트에 집착하는 한국인, 우리는 왜 아파트를 집의 기준으로 생각하게 되었을까? (창신동 절벽, 현대적인 집의 상징, 자산이 된 과정)
아파트에 집착하는 한국인, 우리는 왜 아파트를 집의 기준으로 생각하게 되었을까? (창신동 절벽, 현대적인 집의 상징, 자산이 된 과정)

2. 현대적인 집의 상징 아파트가 된 과정

 

한국의 아파트 역사는 단순히 건축 양식의 변화로만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서울을 비롯한 도시로 사람들이 몰렸고 주택 부족 문제가 심각해졌습니다.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아파트를 적극적으로 공급했습니다. 국가기록원 자료를 바탕으로 정리된 우리역사넷에 따르면 1962년 대한주택공사가 마포아파트를 건립한 이후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파트는 당시 한국 사회에 상당히 매력적인 주거 형태였습니다.

좁은 땅에 많은 사람이 살 수 있고, 상하수도와 전기 같은 기반시설을 효율적으로 공급할 수 있습니다. 주차장과 놀이터, 관리시설을 하나의 단지 안에 넣기도 쉬웠습니다.

 

특히 도시가 빠르게 성장하던 시기에는 이런 표준화와 대량생산 방식이 엄청난 장점이었습니다.

똑같은 평면을 반복해서 만들면 건설 속도를 높일 수 있고 비용을 관리하기도 쉽습니다. 부족한 주택을 짧은 시간 안에 많이 공급해야 했던 한국에서는 상당히 합리적인 선택이었습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습니다.

 

아파트가 단순한 주거 형태를 넘어 중산층의 상징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입니다.

강남 개발과 대규모 아파트 단지의 확산은 이러한 인식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한국의 현대 도시화 과정에서 강남은 대단지 아파트와 신도시를 중심으로 한 도시 모델을 만들어냈고, 이후 다른 지역에서도 이를 따라가려는 욕망이 확산됐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결국 아파트는 단순히 "편리한 집"이 아니라 "잘 사는 사람이 사는 집"이라는 이미지까지 갖게 됐습니다.

3. 자산이 된 주거 형태, 아파트

여기서 한국 아파트의 독특한 특징이 나타납니다.

아파트는 구조가 비슷합니다. 같은 단지에서는 평면도 비슷하고, 같은 면적이라면 방과 거실의 위치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런 표준화는 건설에는 굉장히 효율적입니다.

하지만 경제적인 관점에서는 또 다른 장점을 만들어냅니다.

서로 비교하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어떤 아파트가 몇 평인지, 어느 지역에 있는지, 역과 얼마나 가까운지, 최근 얼마에 거래됐는지를 숫자로 비교할 수 있습니다.

집의 개성이 줄어든 대신 집의 가격을 비교하기 쉬워졌습니다.

생각해보면 상당히 독특한 현상입니다.

단독주택은 같은 30평이라고 해도 토지의 모양과 정원, 건물 상태, 리모델링 여부에 따라 가치가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반면 아파트는 같은 단지 안에서 비슷한 구조와 면적을 가진 집들이 반복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집을 보러 갈 때도 "내가 이곳에서 어떤 삶을 살 수 있을까?"보다 먼저 "이 집은 얼마이고 나중에 얼마에 팔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2024년 기준 한국의 전체 주택 가운데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65.3%에 달했습니다. 2005년의 52.7%와 비교하면 상당히 높아진 수치입니다. 이제 아파트는 한국의 대표적인 주택 형태를 넘어 가장 일반적인 주거 형태가 된 셈입니다.

그러니 아파트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조차 아파트를 포기하기 어려워집니다. 편리해서 선택하는 동시에, 자산으로서의 가치 때문에 선택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4. 아파트의 가장 큰 장점은 사실 '편리함'이다

그렇다고 아파트에 대한 집착을 모두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저 역시 아파트가 왜 매력적인지 이해합니다.

아파트에 살면 관리해야 할 것이 상당히 줄어듭니다. 쓰레기와 음식물쓰레기를 정해진 장소에 가져다 놓으면 관리 시스템이 작동하고, 공동현관과 엘리베이터가 있으며, 주차 공간과 택배 시스템도 갖춰져 있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가정에서는 단지 안의 놀이터나 보행공간이 편리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생활에 필요한 기반시설이 이미 갖춰져 있다는 것이 큽니다.

 

반대로 단독주택이나 오래된 골목 주택에서 살면 내가 직접 관리해야 하는 일이 많아집니다. 주차부터 쓰레기 배출, 보안, 유지관리, 수리까지 신경 쓸 일이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파트를 싫어하면서도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이 이해됩니다. 아파트는 정말 편리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편리한 주거 형태를 선택하는 것과, 그것만이 정상적인 주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아파트가 아니라 '주거의 다양성'일지도 모른다

 

제가 아파트를 보면서 가장 아쉽게 생각하는 부분은 획일성입니다. 같은 단지 안에서 같은 구조의 집들이 반복됩니다. 거실의 위치가 비슷하고, 침실의 위치가 비슷하고, 욕실과 주방의 위치도 비슷합니다. 층이 달라도 기본적인 구조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조금 과장해서 표현하면 거대한 샌드위치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내가 누워 있는 바로 위층에도 비슷한 위치에 다른 사람이 누워 있고, 그 위에도 또 다른 사람이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아파트의 효율성을 위해 필요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구조와 설비를 반복해야 공사비를 줄이고 안정적인 시공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질문을 바꿔볼 필요가 있습니다.

 

효율적인 집을 만드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다양한 사람이 다양한 방식으로 살 수 있는 집을 만들 수는 없을까?

 

싱가포르의 사례가 흥미로운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싱가포르 역시 고밀도 주거와 아파트가 매우 중요한 도시지만, 최근에는 다양한 생활방식과 생애주기에 맞는 주거 유형을 확대하려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싱가포르 URA는 다양한 주거 형태와 새로운 주거 유형을 검토하고 있으며, 건축물의 높이와 배치, 입면 등에 대해서도 주변 환경과 도시경관을 고려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싱가포르 역시 과거에는 주택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주거 형태를 표준화했지만, 이후에는 도시의 개성과 다양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발전해왔습니다. 우리에게도 필요한 변화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5. 좋은 도시는 모든 사람이 같은 집에 살 필요가 없는 도시다

저는 창신동 같은 동네를 무조건 보존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곳에 사는 사람이 불편하다면 생활환경은 개선되어야 합니다. 자동차가 들어갈 수 있어야 하고, 하수도와 주차, 안전, 배달과 물류 같은 현실적인 문제도 해결해야 합니다. 반대로 오래된 동네를 모두 철거하고 똑같은 아파트를 짓는 것만이 해결책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도시에는 여러 종류의 집이 존재할 필요가 있습니다. 고층 아파트도 있고, 테라스가 있는 주택도 있고, 작은 단독주택도 있고, 오래된 골목주택을 고쳐서 사용하는 방식도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파트의 익명성이 좋을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이 부분을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웃과 반드시 친하게 지내야 한다는 부담 없이 내 생활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은 도시가 주는 자유이기도 합니다.

 

반대로 누군가는 작은 마당이 있는 집을 원할 수 있습니다. 또 누군가는 공동체가 가까운 주거를 원하고, 다른 누군가는 철저한 익명성을 원할 수 있습니다. 좋은 도시는 이 모든 선택을 받아줄 수 있어야 합니다. 아파트가 나쁜 것이 아니라 아파트만 가능한 도시가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는 '좋은 집'의 기준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한국에서 집은 너무 오랫동안 가격으로 평가되어 왔습니다.

몇 평인지, 어느 지역인지, 몇 년 된 아파트인지, 역과 얼마나 가까운지, 어느 브랜드인지가 집의 가치를 설명하는 중요한 기준이 됐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작 가장 중요한 질문을 놓치기도 합니다.

 

나는 이 집에서 어떻게 살고 싶은가?

집은 원래 나를 보여주는 공간이어야 합니다.

누군가는 햇빛이 잘 들어오는 집을 좋아하고, 누군가는 작은 마당을 원합니다. 누군가는 높은 곳에서 서울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하고, 누군가는 골목길에서 사람들과 마주치는 삶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모두 같은 평면의 집에 살면서 같은 기준으로 집의 가격을 비교하기 시작하면 주거의 개성은 점점 사라집니다.

아파트가 우리에게 준 것은 분명 많습니다.

빠르게 도시화된 한국에서 많은 사람에게 위생적이고 안전하며 편리한 주거를 제공했고, 부족한 주택을 효율적으로 공급하는 역할도 했습니다. 아파트가 한국의 도시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Korea History Online][3])

하지만 이제는 다음 단계의 질문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파트를 얼마나 더 많이 지을 것인가가 아니라, 우리는 어떤 다양한 삶을 담을 수 있는 도시를 만들 것인가.

창신동의 절벽 아래에서 바라보면 그 답이 조금 보이는 것 같습니다.

성곽 옆의 오래된 골목도 서울이고, 절벽에 기대어 있는 작은 집도 서울이며, 멀리 보이는 거대한 아파트 단지도 서울입니다.

도시는 원래 그렇게 여러 시대와 여러 삶이 겹쳐 있는 공간입니다.

그러니 이제 한국의 주거도 하나의 정답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아파트에 사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아파트에 살지 않으면 제대로 살고 있지 않은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사회가 문제일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원하는 것은 아파트 그 자체가 아니라 안전하고 편리하면서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는 집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선택지가 많아질수록 한국에서 '집'은 다시 가격표가 붙은 자산이 아니라, 사람이 실제로 살아가는 공간에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요?

 

 

 

# 참고자료 및 출처

  • 통계청, 「2024년 인구주택총조사」 — 주택 종류별 구성 및 아파트 비중
  • 서울특별시, 「돌 아닌 매력을 캐다! 서울에서 만난 채석장 3곳」 — 창신동 채석장과 주거 형성 과정
  • 서울 한양도성, 「낙산구간 순성안내」 — 창신동 봉제마을과 채석장 유적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아파트의 등장과 주거생활 변화」 — 한국 아파트의 형성과 도시화 과정
  • UNESCO, 「The Architectural Work of Le Corbusier」 — 르 코르뷔지에의 주거건축과 대량생산 개념
  • Singapore Urban Redevelopment Authority, 주거 개발 및 주거 다양성 관련 지침